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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인류 최초 아름다움의 탄생

by 훈훈하니 2023. 2. 9.

인류가 최초로 예술을 한 시점은 언제일까?

 

프랑스 남부 휴양 도시 니스(Nice)의 한 구릉 지역, 테라 아마타(terra amata)에서 인류 최초의 예술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건설업체가 아파트를 건립하기 위해 땅을 파던 중 선사시대 인류의 뼛조각과 집터, 도구 등이 나왔다.

 

파견된 문화재 조사단은 주황색 물감 덩어리와 붓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간주나무 조각을 발견했다. 그 연대가 무려 40만 년 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인류학자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썼던 논문을 철회하거나 인용하 지 못하게 되었다.

 

고고학이나 인류학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도구는 발견됐지만 그 예술품의 실체는 찾을 수 없었다. 이후 1869년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에서 벽화가 발견되자 인류는 비로소 ‘선사의 예술’을 볼 수 있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

9m 폭의 넓은 방엔 섬세한 필치로 역동적인 동물 형상을 그려놓은 벽화로 가득했다. 상처 입은 들소, 뛰어가는 말, 거대한 뿔을 가진 수사슴 등.

 

보존이 너무나 완벽했고 선사시대의 것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컬러의 배합과 덧칠(마티에르) 기법, 바위의 윤곽까지 활용한 입체감 있는 그림들. 선사의 것이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동굴벽화의 조사단은 진위를 둘러싼 공격을 받아야 했다.

 

 

 

발표장에서 전문가들이 조롱했다.

 

“누굴 바보로 아나!”

 

과학적 방법으로 실체가 규명되자 그들의 야유는 칭송으로 바뀌었다.

이런 충격 때문이었겠지.

 

당대 화가 피카소가 말했다.

 

“알타미라 이후 모든 미술은 쇠퇴했다.”

 

인류 예술행위의 근원에 대한 주장은 대략 노동 기원설, 주술 기원설, 유희 기원설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원시 부족의 노동요와 군무, 몸에 새긴 문신이 수렵하고 살아남기 위한 집단적 노동의 산물이었다는 주장노동 기원설이다. 집단적 노동을 위한 도구가 바로 원시예술이었다는 것이다.

 

원시 부족의 문양과 목걸이 깃털 모두에 주술적 상징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유희 기원설쾌락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놀이라는 설명이다.

위의 2가지 주장도 설득력 있지만, 인류학자들은 ‘주술 기원설’을 중심으로 보고 나머지 2개의 주장 모두 인용하고 있다. 선사시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선 태양과 열매, 출산과 사냥할 수 있는 동물이 필요했는데 이들을 향한 강력한 염원이 주술과 상징으로 발전했고, 이 주술행위 중 하나가 바로 벽화와 같은 예술이라는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사피엔스의 일상공간이 아니라 집단의 사냥 제의를 위해 장치된 일종의 종교적 제의 공간이었다는 주장이 자연스럽다.

 

한편 진화심리학자들은 이 모든 행위를 번식전략으로 설명한다. 공작새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꼬리는 실제 생존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짝짓기에선 다른 공작에 비해 우월한 종자(DNA)라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가 된다.

 

선사시대의 초기 벽화에선 수렵 대상을 그렸지만 이후에 남성은 수렵 능력을 과시하는 이미지로 표현되었고, 여성은 번식을 상징하는 거대한 유방과 엉덩이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BC 3000~2000년경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홀레펠스의 비너스는 지금 보면 엄청난 비만의 소유자로 혼자서는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의 심각성을 보인다. 하지만 그 시대 여성에 대한 가치 기준은 출산과 육아에서의 압도적 능력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유방과 엉덩이는 지금 시대에 군살 없이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여성과 같이 당대에선 매우 중요한 상징이었다. 결국 인류는 짝짓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움과 상징을 관객에게 드러내는 행위로 발전해 왔다는 이야기다.

 

이 시기 아름다움은 ‘생존이었다. 그것은 당장에 ‘먹거리’였고 ‘출산성장이었다. 자연의 이치를 모두 알지 못했던 부족에겐 수호신이 필요했다. 번식과 사냥, 주술 이것들이 당대엔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대부분의 학자는 주술(상징)에서 종교, 철학, 예술, 과학으로 분화한 것이 인류가 지금 학문이라 부르는 것들의 서사라고 보고 있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교수는 『사피엔스』를 통해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피엔스가 수많은 유인원 중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상상력’으로 설명했다. 한 집단에 동일한 것을 믿게 할 수 있는 상상력, 신탁(神託)을 상징하는 리더의 자질은 바로 주술을 통해 집단을 단결시키고 싸움을 조직했다는 점이다.

 
사피엔스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 지구에는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최소 6종의 인간 종이 살아 있었다. 이후 호모 사피엔스 종만이 유일한 승자로 지구상에 살아남게 되었고, 이제 그들은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사피엔스』는 이처럼 중요한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이 있는지, 지금이 전망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한다. 저자는 “앞으로 몇십 년 지나지 않아, 유전공학과 생명공학 기술 덕분에 인간의 생리기능, 면역계, 수명뿐 아니라 지적, 정서적 능력까지 크게 변화시킬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이런 기술 발달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다. 부자들은 영원히 살고,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야 하는 세상이 곧 도래할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우울한 이야기만 풀어놓는 것은 아니다. 그는 행복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고, 행복에 대한 가능성 역시 더 많이 열려 있다고 말하며, 일말의 여지를 남긴다. 이제, 인류가 멸종할 것인지, 더 나은 진보를 이룩할 것인지, 어떤 것에 방점을 두고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
저자
유발 하라리
출판
김영사
출판일
2015.11.24

 

 

유발 하라리 교수는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학살했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하지만 이후 유전자 검사로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혼종이 발견되어 그들의 사랑으로 혼종이 탄생했고 이것이 꽤 오래 지속하였다는 연구결과도 나왔기에 ‘학살 멸종론’을 일방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공존했던 시기가 수만 년이었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으로 모든 것을 규명할 수 없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생물학 연구팀‘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 연구팀은 4만 2천 년 전에 무려 500년간 지속된 자극 역전현상을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이유 중 하나로 본다. 북반부에 쏟아진 엄청난 우주 방사선으로 인해 멸종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처럼 여러 연구 결과가 있지만 적어도 사피엔스의 '언어(기호)'가 종을 가장 강력한 포식자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언어가 아직 다양하게 발달하지 않았던 선사시대 동굴과 제의는 가장 강력한 집단적 기호였다. 선사시대의 초기 계급은 아마 집단의 장이나 주술사와 전사를 상위계층으로 한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주술 기원론이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

 

주술(呪術)을 단순히 많은 짐승을 잡을 수 있게 비는 의식으로만 이해해선 곤란하다. 특정 짐승은 신성시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인류 최초의 신전이라는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는 적어도 1만 1600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신전의 기둥엔 사자, 여우, 가젤, 뱀, 전갈, 멧돼지 같은 동물들이 생생하게 조각돼 있다.

 

주술은 짐승의 영혼을 위로하거나 짐승의 영혼을 불러 집단의 재앙을 물리치는 성격도 강했다. 고대국가가 처음 형성될 때의 예술관(세계관)은 서양과 동양 모두 비슷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절박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하늘의 이치와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사람성령(카·Ka), 혼(바·Ba), 육체(아크·Akh)로 이루어진다. 사람이 죽으면 혼(Ba)은 떠나는데, 육체(Akh)마저 떠나면 성령(Ka)이 있을 곳이 없다고 믿었다. 해당 지역의 기후조건과 이런 믿음은 미라로 사체를 보관하는 장례문화를 발전시켰다.

 

사계절이 있고 무엇이든 쉽게 부패하는 동북아 지역에선 응당 사체는 깨끗이 사라져야 하고 사람의 영혼은 혼(魂)이나 백(魄)으로 나뉘어 하늘로 간다는 신앙으로 자랐다.

 

이집트에서 미라나 살았을 때의 모습을 조각하는 사람, 즉 지금 조각가라고 부르는 이들은 당시 이집트어로 ‘영원히 살게 하는 자’로 불렸다. 이집트에선 인간이자 신이었던 파라오와 왕비에 대한 동상과 회화가 예술이었고, 예술은 국가의 제의(祭儀) 중 하나였다.

 

고조선을 계승했던 고구려인들은 자신을 위대한 '태양의 후예'라고 믿었고 그 태양의 정령이 바로 삼족오(三足烏)였다. 그래서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는 삼족오가 등장한다. 하늘에서 나와 하늘로 돌아간다는 민족신앙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술이 국가의 소유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그림의 대상과 인물의 배치다.

 

이집트와 고구려 모두 지배계급은 화폭의 중심에 크게 그렸고 아랫사람은 그 권력만큼 작게 그려야 했다. 그림의 대상은 응당 당대의 지배계급이어야 했다.

 

인류 예술사에서 아름다움을 논하려면 그리스부터 시작하고, 미학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한다. 한국의 일부 미학자는 이러한 점을 아쉬워한다.

 

미학이라는 개념은 동양에는 분화된 적이 없는 개념이다. 이는 동양에서 아름다움에 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이 서양과 달랐기 때문이다.

 

동북아에서 아름다움이란 사람의 행실과 내면이 하늘(天道)을 닮아야 한다는 문인주의이며, 그림의 대상은 응당 사람의 선한 소망이 투영된 것이어야 했다.

 

동양의 세계관은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라는 천인합일(天人 合一)의 생명주의 사상이다. 동양에서 사람의 내면을 투영한 자연을 그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이 사람이고 하늘이 곧 자연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물의 구성이 애초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접하는 방식에 따라 수천 가지 방향으로 변한다는 것이 기본적 관념이다.

 

서양의 세계관신의 선택을 받은 인간과 그렇지 않은 자연과 분리된 인간중심(人間中心)의 세계관이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의 예술엔 단연 사람이 예술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서 동양은 ‘관계’를 중심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발전시켰고, 서양은 단독자로서의 ‘존재’ 즉 ‘인간’을 중심으로 미학을 발전시켰다.

 

학문의 핵심도 서양은 ‘존재론’이며 동양은 ‘관계론’이라는(이었다는) 성공회대학교 고 신영복 교수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다. 다만 서양이 인간중심의 예술관을 가졌다는 것은 엄밀히 보자면 사실이 아니다.

 

신과 인간이라는 범주로 보자면 동양의 인간이 하늘과 땅의 중간자로 존재했던 반면, 서양의 경우 신의 의지에 따라 구원받거나 시련을 받는 복종자, 피지배자로서의 인간이라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톨릭이라는 유일신 사상이 유럽을 지배한 기간을 살피면 오히려 인간중심의 예술관이 발전한 곳은 동양이었다. 동양의 불교에선 신을 인정하지 않고, 유교에선 신앙을 잡스러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도교의 신선(仙) 역시 인간이 수양하면 신선이 된다는 세계관이다.

 

행동심리학자들의 동양인 서양인의 사고 차이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동·서양인을 대상으로 판다, 침팬지, 바나나를 한 화면에 보여주고 어떻게 묶겠냐고 물었다.

 

동양인은 침팬지와 바나나를 묶었다.

왜냐고?

침팬지가 바나나를 좋아하니까.

 

서양인은 판다와 침팬지를 묶었다.

둘이 같은 종(種)이니까.

 

관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동양인범주를 통해 분리해 바라보는 서양인의 차이다. 서양인은 각기 분리되어 독립한 명사를 발전시켰고, 동양인은 상호작용, 관계와 연관된 동사를 발전시켰다.

 

예술과 주거 형태에도 그대로 구현되었다.

동양에서 화폭에 담은 집은 집 자체가 아니라 산과 강 그 어디에 안겨있는 모습이다.

서양에선 집의 조형적 특성을 그대로 담아 집만을 보여준다.

대상을 전체 속의 부분으로 보는 동양과 대상을 쪼개어질 수 없는 범주로 보는 서양의 차이다.

 

동북아에서 2천 년 넘게 연구되어 왔던 주역(周易)이 바로 하늘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학문이라면, 서양에선 사람과 자연을 관찰해 그 독립적 본성을 연구하는 학문을 발전시켰다.

 

개방적인 다신교 사회였던 그리스와 로마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이를 미의 기준으로 삼는 예술이 발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어로 ‘엘레우테리아(eleutheria)’라는 언어가 고대 오리엔트 어느 지역에서도 번역된 바 없다는 데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학자도 있다. 엘레우테리아는 바로 ‘자유’다. 그래서 그리스의 조각가들은 비로소 살아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노자『도덕경』에서

“대체로 개나 말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고 아침저녁으로 눈앞에 보이므로 똑같게 그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그러나 귀신이나 도깨비는 형체가 없고 눈앞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그리기가 쉽습니다.”(“夫犬馬, 人所知也, 旦暮罄於前, 不可類之, 故難. 鬼魅, 無形者, 不罄於前, 故易之也.”)라고 했다.

 

살아있는 인간을 그리기 위해 화가와 조각가들은 과거의 온갖 상징으로만 가득 찼던 조악한 화풍을 버리고 사람의 머리털과 갑옷의 장식, 팔뚝의 힘줄과 펄럭이는 옷감의 결을 재현할 수 있어야 했다.

 

서양에서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이를 평가하는 미학이 발전하게 된 토대는 또 있다. 결정적으로 당대 예술가들은 클라이언트의 주문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황제와 귀족 계층의 인물화를 그렸고 르네상스 이후엔 교황청과 메디치가(Medici family)와 같은 짱짱한 귀족 가문의 주문으로 신화나 성화의 주인공이 된 교황과 주교, 귀족의 모습을 그려 넣어야 했다.

 

시장도 있었다. 도시 광장과 성 당, 집 앞의 정원엔 조각이 들어섰고, 넓은 벽으로 구축된 빌라형의 주택이나 대성당에는 그림을 채워 넣을 공간이 충분했기에 큰 화폭의 그림과 벽화 주문이 이어졌다. 주문자와 관객, 시장이 만난 것이다.

 

동양의 귀족 계층이 자신의 수양이나 벗을 위한 선물로 그림을 그리고, 결코 그림 실력을 밖으로 드러 내지 않으려 했던 문인주의 화풍과는 대조적이다. 단축법, 투시 원근법, 명암법, 해부학적 묘사와 상징체계, 도상학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전한 배경이다.

 

 

 

그리스 아름다움의 기준<밀로의 비너스(Aphrodite of Milos)>로 대표된다. 아프로디테 신전 앞의 밭에서 발견되었다. 비너스의 신체완벽한 해부학적 관찰로 완성되었고, 키가 머리 길이의 8배인 팔등신(八等身)의 비례법을 관철했다.

 

무엇보다 인간의 신체를 가장 역동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이른바 S자 형태의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가 그토록 신비하게 표현된 작품이 이전엔 없었다.

 

로마 포도밭의 공중목욕탕 유적에서 발견된 <라오콘 군상(Laocoon and His Sons)> 역시 라오콘과 두 아들의 고통을 치밀하게 묘사한 걸작이다.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예술의 기적’이라고 추앙한 것도 과장이 아니다.  헬레니즘 시대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사모트라케의 니케(Nike of Samothrace)>까지. 두상이 없는 여신상이지만, 두상이 없어도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여기서 잠깐, 중요한 포인트를 짚고 간다.

 

비너스의 신체는 보는 사람을 황홀경으로 몰아넣을 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비너스의 신체와 같지 않다. 같을 수가 없다. 헬레니즘 시대 예술가들은 실재를 모사하면서 아름다움을 얻은 것이 아니다.

 

“실재하지 않지만 아름답게 보이는”

그 무엇을 확보한 것이다.

 

이렇게 비로소 공간감과 역동성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인간(신)을 아름답게 보이게 할 수 있는 사실적 묘사가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정착되었다.

 

논란은 있지만, 이 시점을 보통 고전기 후기에서 헬레니즘 시대라고 본다. 결정적으로 이후 시대를 규정할 만큼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철학자가 나왔다.

바로 플라톤이다.

 

 
영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영상은 움직이지 않는다』은 영상예술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데 꼭 필요한 어려운 미학과 기호학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영상이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예술이고 인류의 문화적 성취를 집약한 장르이기 때문에 관련되거나 파생된 학문의 수는 엄청나다. 영상미학은 영상을 통해 특정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할 때 어떤 방식이 더 효과적인가를 다루는 학문이다. 기존에 소개된 영상미학 서적들이 번역학문으로 주관적이고 학술적인 개념 풀이로 어려웠던 반면 이 책에서는 인류가 창조했던 수없이 많은 미학적 요소들을 대중적으로 유명한 회화, 조각, 건축, 영화 등 작품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태곳적 예술의 발전과 아름다움의 기준, 아이콘, 화풍의 변화, 사진의 발명, 영화의 등장 등 인류 예술의 서사를 철학적 가치와 엮어내 문화와 예술의 관점으로 이해를 돕는다. 이미지와 영상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초심자라면 구체적인 영감과 길잡이가 되어줄 영상미학의 입문서이자, 교양서이다.
저자
이훈희
출판
책과나무
출판일
202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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