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무모해도 좋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고, 결혼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제부터는 실전이다. 나이 차가 많은 커플이거나, 직업이나 환경의 차이 등등 부모님이나 가족 및 주변인들이 결혼을 반대할 만한 핸디캡을 갖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집중해서 보아도 좋다.
영화 <테이큰>은 2008년에 개봉한 액션 스릴러다. 개봉 당시에도 많은 인기를 끌었고, 이 영화와 더불어 주인공인 리암니슨도 큰 인기를 얻었다. 흥행에 성공하면서 3탄까지 시리즈로 상영됐다.
리암니슨이 맡은 역할은 전직 경호원으로 이혼한 아내와 딸이 하나 있다. 너무 과하게 딸을 걱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딸바보 연기를 펼친다. 그리고 납치된 딸을 위해서 목숨 내놓고 적을 제압하고, 딸에 대한 단서를 알고 있는 놈들에게는 모진 고문까지 불사한다. 봉준호의 영화 <마더> 속 모성을 능가하는, 절절한 부성을 보여준다.
파리로 여행을 떠난 딸 킴(매기 그레이스 분)은 아버지 브라이언(리암니슨 분)과 통화를 하던 중 납치당한다. 아무런 이유도 단서도 없다. 킴의 부서진 휴대전화에서 피터의 사진을 발견한 브라이언은 그를 미행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얻으려던 순간 피터는 죽고 만다.
유력한 조직원의 옷에 몰래 도청장치를 숨겨 넣는데 성공한 브라이언은 목숨 건 추격전을 펼친다. 그의 딸 킴이 납치당하던 순간 휴대전화를 향해 소리쳤던 외모를 그대로 지닌 그놈. 브라이언은 특수요원 시절 익힌 잔혹한 기술을 동원해 결정적 단서를 얻고, 사투 끝에 마침내 딸을 구해낸다.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딸바보 아빠의 목숨을 건 추격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는 딸 바보 아빠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사가 등장한다.
I don’t know who you are.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른다.)
I don’t know what you want.
(네가 뭘 원하는지도 모른다.)
If you’re looking for ransom, I can tell you I don’t have money.
(몸값을 원한다면, 돈은 없다는 말밖에 해줄 수 없다.)
But what I do have are a very particular set of skills.
(다만, 남다른 재주는 있지.)
Skills I’ve acquired over a very long career.
(밥벌이하려고 해온 짓이 그런거라)
Skills that make me a nightmare for people like you.
(너 같은 놈에겐 악몽같은 재주지.)
If you let my daughter go now, that’ll be the end of it.
(지금 딸을 놔준다면 여기서 끝내겠다.)
I will not look for you. I will not pursue you.
(너희를 찾지 않을 것이다.)
But if you don’t,
(허나 그러지 않겠다면)
I will look for you.
(너희를 찾을 것이다.)
I will find you…
(찾아내서)
and I will kill you!
(죽여 버릴 것이다!)
나도 딸 둔 아빠가 되어 보니, 영화 속 리암니슨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딸은 미소와 애교 한방으로 세상살이 팍팍함을 잊게 해주는 존재이자 ‘난 아빠니까 늙어서도 병 들어서도 안 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아빠라는 이름의 무게를 알게 해주는 존재이다.
만약 당신에게도 기꺼이 목숨내어 줄 수 있는 사랑스러운 딸이 있다면?
그 딸이 20대의 어린 나이에, 열여덟 살이나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그 결혼을 허락해 줄 수 있겠는가?
내 주변에서는
‘남자가 재벌이라면 가능하다.’
이런 답이 제일 많았다.
나는 재벌도 아니었고, 가능성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상태였다.
당시의 난, 딸 둔 아빠가 아니었지만, 반대를 예상하는 수준 정도의 양심은 있었다. 그래서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가는 일 자체가 두려웠다.
당시 나는 보잘것없는 신세였다. 국내 유명 IT 기업에서 2년 동안 근무하며 받은 고액의 연봉은 빚을 갚는데 다 쓰였고, 퇴직금도 프러포즈를 위한 파리 여행을 위해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1년 안에 결혼식을 올리자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인터넷 신문사를 만들었다. 간절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운 좋게도 얼마 뒤,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국내 대형 신문사에서 파트너사를 구한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내가 운영하던 회사는 문화예술 분야의 국내 최다 보유업체로 커가고 있었다. 나의 노력이 뒤늦게나마 빛을 볼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이 생긴 것이다. 다행히 그 대형 신문사에서도 나의 제안에 관심을 보였다.
협상이 시작됐다.
‘계약을 못 따내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속으론 잔뜩 움츠려 있었다. 겉으론 의연함을 유지했지만 속은 타 들어가고 있었다. 있어 보이게(?) 하는 전략으로 포장했다. 협상 미팅하는 날은 외제차를 빌려 끌고 갔고, 내 제안을 수락하지 않으면, 다른 대형 신문사와 계약하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그 대형신문사 대표이사는 내가 운영하는 콘텐츠에 관심이 매우 많았고, 당시 그 신문사의 사업본부장이 적극적으로 구애해서 파트너 계열사로 성사된 것이라고 했다.
비즈니스도 연애와 같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어쨌든 빈털터리에게 누가 기회를 주겠는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돈을 내어주는 건 투자의 기본 법칙이다.
‘계약 안 하면 니들만 손해다.’라는 자존심을 앞세운 나의 작전은 정말로 통했다.
작전도 작전이지만, 내가 가진 콘텐츠의 가치를 알아봐 준 것이다. 창업 4개월 만에 정식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위상이 높아진 나의 회사에서 계속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당시 그 계약에 매달렸던 이유 중 절반은 당장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돈과 직장이 필요했기 때 문이었고, 절반은 여자 친구를 위해서였다. 편집장이라는 직책이, 그리고 작은 회사보다는 큰 신문사에서의 경험이 그녀의 경력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행여나나 주변의 반대로 헤어지게 되더라도, 그녀가 다른 신문사로 이직을 하게 되더라도, 그녀가 더 좋은 조건으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성공적이 었다.
그 대형 신문사에서 그녀의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쓰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실력은 이미 과거에 대형 신문사에서 공연칼럼을 기고하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간행물에도 칼럼과 인터뷰 등을 기고한 이력이 바탕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창업과 계열사 계약 등등의 치열한 시간을 지나오느라,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약속했던 1년이란 시간은 이제 5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부모님이 허락을 해줄지도 모르는 상황. 일단 허락을 받 아야겠지만, 반대를 하시더라도 우리는 결혼을 강행하기로 했다.
아주 잠깐, 허락을 받아내는 꼼수를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바로 혼전임신.
혼전 임신으로 손주를 빨리 안겨 드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말자고 뜻을 모았다.
일단은 임신으로 결혼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싫었다. 아마도 혼전임신의 가장 큰 불편함은 임신이 결혼을 결정하는 수가 많아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이유가 사랑이든, 물질이든, 결혼은 행복하기 위한 결합이다. 그런 결혼이 혼전임신을 만나면 행복을 위한 결합이 아니라 출산과 육아를 위한 결합이 되어버린다.
결혼이라는 결합 형태를 절대적이지 않은 것으로 치더라도 결합을 통한 임신이 아니라 임신을 통한 결합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생각이지만.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결혼을 약속했거나 한다면 그래도 좀 낫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임신을 하고 그런 상황에 떠밀려서 결혼을 한다면, 좀 못되게 얘기해서 그것은 두 사람이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결혼을 택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결혼은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결혼을 하기 위한 빌미가 된 임신은 불러오는 배 덕분에 그런 과정이 성급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결혼 준비를 한다는 것은 집을 구하고 가구와 그릇을 장만하는 것만이 아니다.
정말 이 사람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란 고민, 그 고민에 대한 결정과 선택을 스스로 하고 뜻을 확고히 하는 것이 결혼 준비의 가장 큰 일이다. 혼전임신은 준비되지 않은 결혼을 부추긴다.
준비되지 않은 결혼이 준비된 결혼보다 나을리 있을까?
일단 결혼식을 저지르기로 했다. 남들은 결혼식 날짜를 미리 받아 놓고 식장을 잡는다는데 우리는 예식장부터 정했다. 그리곤 예식이 가능한 날 중에서, 9월로 날짜를 정했다. 장소는 7년 연애기간 동안 한강 고수부지에서 데이트하며 멀찌감치 바라만 보아왔던 세빛둥둥섬 플로팅 아일랜드로 정했다.
대관료가 부담됐지만, 우리는 꼭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7년이라는 연애기간 동안 수없이 한강 고수부지를 걸었고, 컵라면을 먹던 추억 넘친 특별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교회도 더 열심히 다녔다. 기독교 모태신앙인 그녀는 종교가 같은 남성과 결혼하고 싶었는데, 난 이 미 기독교에 입문한 지 5~6년 되었고 세례도 받았지만 그다지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지는 않고 있었다. 나에게 종교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지만, 아내에게는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기왕이면 난 더 열심히 교회에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신앙심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건 아니지만, 난 순순히 교회에 나가고 성경공부를 했다. 솔직히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탓도 있다. 가뜩이나 많은 나이 차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는데, 종교문제까지 더해지면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했다.
종교는 내 나름의 큰 문턱을 넘는 일이었다. 예전에 비해 종교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결혼에서만큼은 여전히 종교가 중요한 이슈다. 종교가 다른 상대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종교의 문제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
주변에서 부부, 혹은 고부간에 종교가 달라서 갈등을 겪는 경우를 종종 본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모, 직업, 학벌 등을 따지는데, 종교적 부분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종교는 개인의 정서와 성격, 생활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부의 종교관은 단지 부부 사이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부와 부모의 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른 종교 때문에 생기는 갈등은 고부갈등, 형제간 갈등, 친척 간 갈등으로 빠르게 확산될 수도 있다. 가족간 종교 갈등은 관혼상제례를 치르면서 증폭된다.
예를 들어, 믿는 종교에 따라 제사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판이하다. 유교와 불교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천주교는 제사를 관습과 문화로 규 해 신앙적 차원이 아닌 개인의 선택에 맡겨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반면 기독교에서는 우상숭배 등 교리적 이유로 거부한다.
장례식도 마찬가지다. 고인의 영전에 절하고 따뜻한 국 한 그릇, 밥 한 그릇 올리려는 한국적 정서와 종교적 신념을 놓고 일가 친척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친구에게 벌어진 일이다. 장손이었던 친구는 1년에 6차례 돌아오는 제사와 명절 때마다 죽을 맛이었다. 동생들로부터 형제간의 의를 끊거나 아니면 형수와 헤어지라는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친구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맏며느리인 아내가 자신의 종교에 따라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지내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어머니의 시신을 앞에 두고 시작된 격론은 전통식과 기독교식으로 두 번 장례를 지내는 것으로 사태가 수습됐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몇 달 뒤 아버지의 제삿 날, 아내가 제사는 우상숭배라며 제사 지내기를 거부하고 기독교식의 추도예배로 대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장례문제로 감정이 상해있던 터라 갈등은 심각했다. 동생들은 분노를 삭이지 못해 욕을 퍼부어댔고, 누나와 여동생들은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야말로 집안은 난장판이 되었고 결국 그날 이후 아내와 동생들은 완전히 등을 돌려 버렸다.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되었냐고?
형제들과 의를 끊고 아내를 따라 교회에 다니고 있다. 물론 심한 경우에 해당되는 사례다.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끼리 결혼한다면 아무 문제도 안 되겠지만, 인연이라는게 꼭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종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종교가 다른 커플은 결혼 전 종교문제에 대한 대화와 합의가 꼭 필요하다. 결혼해서 설득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은 금물이다. 또한 상대방의 종교를 따르겠다는 약속도 신중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다행이었던 건, 나에게 종교가 없었다는 거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독교에 대한 편견도 그녀를 만나면서 바뀌었다. 오히려 종교의 순기능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믿음이 있기에 쉽 게 흔들리지 않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결혼 후에도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구체적인 약속도 했다. 나는 장남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야 하지만, 아내는 참석은 하되 절하지 않는 것은 종교적인 이유니까 나와 우리 가족이 이해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우리의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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