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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탈출 레시피

믿음을 쌓아가는 디테일 1. 오해하지 말고 변화와 일상의 조화를 꾀해야

by 훈훈하니 2023. 2. 23.

대학로 인기 코미디 연극 <그 남자 그 여자> 남녀가 연애하면서 생기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그래서 평범한’ 순간들을 보여준다. 이 연극에는 4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우선 서른의 문턱을 넘은 '선애'가 나온다. 그녀에게는 지난 사랑이 있었다. 7년을 만나며 무수히 많은 날들을 함께 꿈꿨던 남자가 나온다. 그는 그날 선애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

 

극 중 선애는 ‘구 남친, 현 나쁜 놈’이 되어버린 그와의 마지막을 시시하게 장식할 수는 없어서 친히 식장까지 찾아가 앞날을 축복해 주는 ‘아량’을 베푼다. 물론 그녀만의 방식으로.

 

‘이런 날 혼자인 건 말이 안 돼!’

 

그래서 학교 후배이자 직장 후배인 '정훈'을 대동하기로 한다. 사실 정훈에게는 10년 동안 짝사랑해 온 ‘그녀’가 있다. 대학 시절 뜨거운 연애에 빠져있었던 그녀는 이제 실연의 아픔 속에 빠져 있다. 마침내 내게도 기회가 왔구나, 싶지만 지금의 그녀는 사랑 따윈 믿지 않는 눈치다.

 

행복해 보이는 연인을 마주칠 때면 ‘이 남자는 정말 다를 거라 믿고 싶겠지만 결국엔 그놈이 그놈’이라는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붓는다.


정훈과 달리 '정민'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마주친 '지원'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시각에 지하철을 탄다. 자연스럽게 그녀에게로 향하는 눈길, 작은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시선도 애써 감추지 않는다. 그녀가 실수로 떨어뜨린 지갑 역시 돌려줄 마음은 없다.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


지원은 쉽게 마음을 내어줄 생각이 없다. 능글맞은 듯 담백한 정민의 고백이 싫은 건 아니지만, 무턱대고 다가서는 그의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 못 이긴 척 넘어가 주자니 어딘가 찜찜하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마음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올 리 없는 문제들을 고민하던 끝에 결심했다. 확실히 약속을 받아두자고.

그렇게 극 중 네 사람은 연애를 시작한다.

연극 <그 남자 그 여자> 공연 실황 일부

서로 다른 연애 경력을 가지고 서로 다른 시간을 지나고 있지만, 이들에게 찾아온 감정은 다르지 않다. 연극 <그 남자 그 여자>의 주인공들에게도 연애의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현실’, ‘입장’, ‘차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문제들을 그들이라고 비켜갈 수는 없었다. 누구나의 연애에 등장하는 한 장면처럼, 이 연극에서도 서로를 사랑하지만 안타까운 오해로 인해 헤어지게 되는 이별 장면이 나온다.


연애를 하게 되면 사전에 서면으로 작성했다거나 구두로 합의를 하지 않았지만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매일 서로 지키게 되는 암묵적인 습관이나 둘만의 룰이 생긴다.

 

가령

매일 같은 시간에 문자메시지를 보낸다든가 전화를 한다든가,

매주 어떤 요일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당연히 데이트를 한다든가,

영화를 보러 가면 예매는 보통 내가 밥은 상대방이 산다든가

하는 사소한 것들이다.

 

때로는 대화와 논의를 통해 반드시 행하거나 지켜야 하는 사항들을 사전에 공지하기도 하지만, 보통 두 사람 간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암묵적인 약속이나 습관들은 결국 신뢰를 형성해 가는 밑거름이란 생각이 든다.


연애 기간을 어느 정도 지속한 커플들이 다투게 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예전엔 꼬박꼬박 해주더니 이젠 왜 안 해?’

라는 불평에서 시작된다.

 

해준다? 오해 마시라.

문자, 전화, 기타 등등 오롯이 그 커플끼리 해오던 사항을 말하는 것일 뿐.

 

하여튼 이런 불평은 사실 자신이 상대방에게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을 무시당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이는 두 사람 간의 암묵적인 룰, 즉 서로가 지켜오던 마음의 신뢰에 금이 가는 시발점이 된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암묵적인 합의들이 있었다. 우린 1년에 360일 정도를 만났다. 매일같이 직장에서 그리고 주말마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난 그녀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그 규칙은 7년의 연애기간 내내 변하지 않았다. 이건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나도 참 대단했다.(부심 가득^^)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해 겨울. 갑작스럽게 함박눈이 내렸다.

덜덜거리는 중고 고물자동차로 겨우겨우 비탈길을 올라, 그녀의 집 앞까지 내려주는 데 성공했다. 올라왔으니, 가는 길은 당연히 내리막길. 그 사이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쌓였다. 이대로 갔다간 위험하다 싶어, 차에서 기다렸다.

 

1시간 정도를 기다렸을까. 눈발이 잦아들었고, 난 내리막 길의 눈을 쓸기 시작했다. 그대로 내려가면 위험하다 싶어서, 쌓인 눈을 쓸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새벽 4시였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도 눈은 엄청 내렸고, 난 통금시간이 되기 전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이었다.

차가 갑자기 멈춰버렸다. 갑자기 멈춰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정말 오래된 중고차였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차가 멈춰 선 곳이, 하필 미군부대 앞이었다. 미군부대 헌병이 나와서 가라고, 차를 치우라고 성화를 부렸다. 견인차 불렀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그런데 그날 나 같은 사람이 많았었는지 견인차는 한 시간 돼도 오지 않았다. 헌병은 자꾸만 눈치를 주고……. 그러던 찰나에 기적처럼 시동이 걸렸다. 통금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겨우 맞춰서 그녀를 데려다줄 수 있었다.

 

하지만 내리던 눈은 폭설로 바뀌어 있었고 그 눈길에 운전을 해야 했다. 그녀에게는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저히 운전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쌓였었다. 그날 나는 그녀의 집 근처 모텔에서 혼자 묵었다. 물론 그녀에게는 비밀이었다. 다음 날 출근했을 때 옷이 똑같은 걸 보고 알게 됐지만.


‘만날 때마다 바래다주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었기에 지키고 싶었다.

 

연애기간이 오래돼면, 보통은 여자 쪽에서 이런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남자가 여자의 환심을 사려고 특별히 연애 초반에 신경 쓰고 심혈을 기울였던 것들을 여자는 암묵적인 습관, 일상적인 사랑 또는 신뢰의 표시로 인식하게 되고, 남자가 이젠 어느 정도 관계의 긴장을 늦추고 힘을 빼며 여자가 암묵적인 규칙이라 여겼던 것을 그만두는 순간 여자는 사랑하는 마음이 식었다느니, 사람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커플이나 부부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만이 쌓아온 관계의 일상적 습관들,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합의의 형태와 모습은 제각각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쌓인 고유한 습관은 공통적으로 모든 커플에게 견고한 신뢰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아침 일과를 허겁지겁 치르고 멋대로 생략하는 하루가 지속된다면 일주일의 피로는 더 두껍게 쌓인다. 생활의 활력이나 즐거움도 감소된다. 하루의 밀도가 다르게 흘러간다. 삶의 균형은 약간의 변화와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탄탄한 일상으로 주어진다. 사람은 격변 속에서도 자신만의 일상과 규칙을 찾아 균형을 잡아낸다.

 

두 사람의 관계 역시 변화와 일상의 조화가 필요하다.

자극과 안정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갈 때 관계는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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