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중에 누구에게 먼저 결혼 허락을 구할 것인가?
고민할 필요 없이 나에게 정답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사실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 나는 장인어른과 식사 자리를 몇 차례 가진 적이 있었다. 물론 딸이 다니는 직장 상사이자 대표의 자격으로 만난 것이었다.
회사로 초대도 하고 회사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드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별다른 의심의 눈초리 없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기에 그녀의 아버지께 결혼허락을 구하는 게 먼저였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다행히 예비 장인은 별다른 의심이 없으셨다.
나중에 들어보니, 나이 차가 엄청나다 보니, 둘이 사귈거라곤 생각도 못 하셨다고 한다.
그냥 ‘내 딸이 다니는 회사 대표가 참 친절하고, 사려 깊고, 신중하고……. 내 딸이 일을 워낙 잘하니까 그럴 테지.’ 이런 생각뿐이셨다고.
평생 교직에 몸담은 예비 장인은 선량하고 인자한 분이셨다. 여자 친구와 내 나이 차보다 예비 장인과 나의 나이 차가 더 적었다. 그러다 보니, 마냥 대하기 어렵기만 한 어른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동네에서 만난 큰 형님처럼 얘기가 잘 통했다.
사회나 정치 문제까지 폭넓은 대화도 가능했다. 게다가 장인은 남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냥 듣고 지나치지 못했다. 한마디로 오지랖 넓은 타입이라고나 할까. 가족이나 친지, 직장동료, 교회 사람들과 이웃까지 무슨 일만 있으면 발로 뛰어서 방법을 찾아주고 도와주시는 그런 분이었다. 아마도 교사생활을 오래 하셔서 제자를 대하는 마음으로 몸에 베인 익숙함이 아닐까 싶었다.
결혼식을 100일 정도 남겨둔 시점.
여자 친구와 함께 예비 장인을 만나기 위해 천안으로 향했다. 장인어른이 근무하는 학교가 천안이기도 했고, 취미로 활동하는 오페라 무대의 출연을 응원도 할 겸.
유난히 더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예비 장인을 만나기 전, 난 머릿속으로 수천 가지 버전의 시나리오를 그려봤다. 그중의 최악은 나에게 배신감을 느낀 예비 장인이 그 학교의 제자인 야구부원들을 불러다가 쥐어 패주는 거였다. 패 놓고 허락을 해주면 괜찮은데, 결혼은 꿈도 꾸지 말라며 노발대발하는 모습으로 끝나는 거였다.
불길한 상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만약의 불상사를 대비해 옷을 껴입었다. 방탄조끼 같은 걸 구할 수만 있다면 입고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도 예비 장인은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동안 밀렸던 사는 얘기, 정치, 사건 등 대화의 토픽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나는 감히 결혼이라는 말은 입에도 올리지 못했다. 내가 용기를 내기도 전에 예비 장인이 먼저 피곤한 표정으로 불쑥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날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여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엄마한테 말씀드렸어. 자기랑 결혼하겠다고.”
기다림보다 용기가 앞섰던 여자 친구가 먼저 터뜨렸다.
“뭐라고 안 하셨어?"
"화내시진 않았고?”
“화나신 건 예상대로고, 나도 자기도 꼴 보기 싫다고.”
“잘됐다. 이제는 직진만 남았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일단 그녀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 여자 친구부터 안심시키고 위로해 주고 묵묵히 그녀의 부모님의 결단을 기다리는 수밖에. 예비 장인이 충격을 많이 받으신 것 같아 걱정이었다.
왜 충격을 받질 않겠는가?
직장 상사인 척 접근했던 내가 괘씸했을 테고, 무엇보다 애지중지 키운 딸을 데려가겠다고 나선 도둑놈, 그것도 나이까지 한참이나 많으니 천하의 도둑놈으로 보였을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 나에게 손 하나(?) 대지 않고 보내주신 장인어른의 인자하고 온화한 인품에 감사할 뿐이다. 물론 장모님도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셨으니 당연히 감사할 따름이고.
애가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며칠이 흘렀다.
그냥 헤어지라고 하시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결론은 한 가지였다.
밀어내도 물러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무릎 꿇고 매달릴 각오를 더욱 다졌다. 혹시나 그녀와 헤어지게 되더라도 난 그녀와 함께 보낸 7년의 시간을 헛되이 마무리 짓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결혼을 추진하고 정말 안되면 그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비밀 연애는 끝까지 숨겨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 좁은 바닥에서 적어도 그녀가 나 때문에 피해 보는 일은 없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7월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예비 장인장모가 회사로 찾아오시겠다는 연락이 왔다.
“몇 가지 자네가 준비할 게 있어. 자네가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인지 증명이 필요한데.”
증명이란 건 서류준비를 의미했다. 나란 사람에 대해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라 는 말뿐이었다. 결혼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증명서(결혼증명서)는 최우선 필수서류라고만 하셨다.
나이 때문에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이고 주민센터를 찾아갔다. 서류를 준비하면서 혹시나 여러 번 이런저런 서류를 빌미로 지연될까 봐 혼자 살고 있는 집 월세 계약서와 사무실 임대차 계약서, 급여통 장, 졸업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 주민등록등본 등의 서류를 미리 다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당시 메르스 사태 때문에 건강검진 결과만 받지 못했지만, 여하튼 떨렸다. 허락을 하러 오신 게 아니었다. 딸의 직장 대표가 아니라 사위로 자격이 있는지를 다시 보고자 오신 거였다.
장인어른만 오셔서는 별말씀 없이 서류만 보고 가셨다. 며칠 뒤 여자친구 집 근처의 카페에서 장모님을 따로 만났다. 이전에 뵌 적은 있지만 역시 회사 대표로 인사만 나눈 사이라 더 떨렸다.
이윽고 카페 한쪽에서 내 신상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자세로.
초조한 마음으로 판결(?)을 기다렸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돌이 심사위원 앞에 섰을 때의 심정이 나와 같았을까?
연습생으로만 살아왔던 탓에, 여기서 떨어지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던 출연자들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나는 절박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예비 장모가 입을 열었다.
“사업한다는 사람이 빚이 없는 게 대단하네. 열심히 살았나 봐.”
빚은 없었지만, 통장 잔고는 그야말로 처참한 수 준이었다.
“부끄럽습니다. 일은 열심히 했는데, 모아둔 돈이 별로 없어요.”
“아직 젊은데 무슨 걱정이야.”
기대하지도 않았던 응원까지 해주셨다.
예상외로 한 번에 승낙이 떨어졌다.
장모님은 허락해 주러 오신 거였다.
코끝이 찡했다. 창업부터 장모님께 허락받기까지, 8개월.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 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여자친구가 집에서 혼자 겪었던 수많은 난관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암튼 난 결혼을 허락해 주신 장모님에게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해드리고 싶었다. 여자 친구와 상의 끝에 3박 4일간 제주도 여행을 보내드리기로 했다.
메르스가 나를 도왔다.(메르스 사태로 고통받았던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다.)
당시 메르스 사태로 관광객이 뚝 끊겼던 탓에 비행기는 택시 요금보다도 저렴했고 예약도 매우 수월했다. 1박에 수십만 원을 넘는 고급 호텔 숙박료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나와 있었다. 경제적인 비용으로 최고의 선물을 해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결혼 승낙은, 나중에 알고 봤더니, 여자 친구의 힘이 컸다. 부모님을 만나 설득을 했고, 뭐든지 자신의 선택에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왔던 믿음직한 딸이었기에, 아버지도 어머니도 딸의 선택을 믿어준 것이었다.
이제 나의 부모님 설득만이 남았다.
“축하할 일인데 갑자기 왜? 너 사고(임신) 쳤냐?”
“나이도 어린데 남의 집 귀한 딸 인생을 책임지는 게 결혼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냐?”
“너의 입에서 결혼이란 단어가 나와서 기쁘지만 며느리 나이가 너무 어려서 걱정이다.”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구박하시면서도 하시는 말씀이 모두 걱정뿐이었다. 여자 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갔다. 예상은 했지만 나이 먹고 결혼도 못하고 있는 아들을 선택해 줘서 고맙다는 표현을 하셨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아버지의 함박웃음은 그때 처음 본 것 같다.
우리는 결혼식 준비를 착착 해나갔다.
예식장 다음으로 선택에 있어 많은 품이 드는 웨딩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선택, 메이크업 등 일명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부터 신혼여행 스케줄까지 빠른 속도로 정했다. 그냥 찜만 해둔 게 아니라, 계약금까지 모두 지급했다. 결단코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그리고 양쪽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지 한 달여 뒤, 9월 11일. 비 오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급하게 예약하느라 주말은 안되고 평일저녁만 가능했던 터라. 여하튼 7년 연애한 우리 커플은 드디어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음식 맛있더라.”
“경치 멋지더라.”
“분위기 좋더라.”
“주례 진중하고 재밌더라.”
“축가 멋지네.”
“신부 예쁘구나.”
결혼식 자체에 호평이 쏟아졌지만 신랑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서운함은 하나도 없다. 결혼식은 그 준비의 처음부터 끝까지 개고생 했던 나에게 준비한 최고의 선물이었으니까. 물론 주인공은 신부였지만. 이 페이지를 통해 결혼식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도 진심 재차 감사드린다. 비 오는 평일 저녁에 대중교통 불편하고, 주차장에서 예식장까지 제법 걸어야 했던 터라.
언젠가 친구 녀석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30대 후반에 만나 40을 훌쩍 넘어서까지 열 살 어린 여자와 6년을 열애 중이었던 친구는 얼마 전, 그녀와 헤어졌다고 했다.
그 친구는 물론 결혼까지 생각하고 만남을 이어왔었다. 당시 3년 즈음 지나서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여자 집에서 반대가 극심했었다. 아예 만남조차 없었다.
그 친구는 나와 상황이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장남에 벌어둔 돈도 없고, 직장도 내세울 게 없다는 것, 반대로 여자는 당시 신붓감 순위 1위라는 선생님이었다. 여자 친구는 만나보고 나서 싫다고 해야 할 것 아니냐며 그녀의 엄마를 설득했고, 결국 만남이 성사됐다.
그녀의 어머님이 내 친구에게 꺼낸 첫마디.
"이제 그만 헤어지게"
그다음은.
"뭐 마음에 드는 게 한 가 지라도 있어야 생각을 해보지."
"우리 딸 더 나이 들기 전에 그만 놔주게."
그런데 그 친구 녀석은 그 자리에서 바로
"네, 알겠습니다"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이 커플의 미래는 어떻게 됐을까?
남자가 여자에게 먼저 이별을 고했을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여자가 먼저 친구 녀석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그것도 단호하게.
자신의 엄마 앞에서 한마디 항변도 하지 않고 곧바로 헤어지겠다고 자리를 떠난 그 모습에 실망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우리의 사랑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어떻게 나랑 헤어지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자기 자존심만 챙기냐고.
여러분이라면 어땠을까?
나 역시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나도 내 자존심 지키는 데만 급급했었다.
신용불량자이던 때보다는 사정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난 모아둔 돈 한 푼 없고, 회사는 앞날이 어찌 될 줄 모르는 뭐 하나 정해진 게 없는 불안한 상태였다. 게다가 여자들이 싫어하는 장남에 마흔 중반을 넘긴 나이까지…….
배우자감으로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애를 하다가 결혼 얘기가 나오면 슬금슬금 거리를 뒀고, 온갖 핑계를 대서 헤어지곤 했었다. 내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 여자 쪽에서 먼저 헤어지자고 할 게 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사귀는 여자 앞에서는 앓는 소리 한번 해본 적 없었고, 일부러 있는 척 허세를 부렸었다. 차이는 것보다는 차는 게 자존심이 덜 상하는거라 생각해서, 차일 것 같으면 먼저 차버렸다.
지금의 아내에게만큼은 달랐다. 다른 여자와는 번번이 문제가 되었던 고비들이 아주 순조롭고,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사귀고 3년 만에 신용불량자임을 고백하면서, 내 주머니 사정을 확실하게 공개했다.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을 도와줄까 걱정을 앞세웠다.
그래서일까?
처음부터 아내 앞에선 애써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었다. 만약 내가 있는 척, 허세를 부렸더라면, 아마 먼저 도망쳤을 여자다. 그녀 앞에서 난 숨김없이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줬다.
결과는 오히려 긍정적이었다.
처음으로 수입을 공개하고, 미래의 계획에 대해서 어필한 첫 여자.
미흡했지만 신뢰를 갖고 지지해 준 첫 여자.
내가 먼저 나를 믿어 달라고 얘기한 첫 여자.
그리고 나를 믿어준 첫 여자였다.
서로에게 단단한 신뢰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어떤 일을 시도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시도조차 않는 것보다는 실패의 두려움을 이기고 시도하는 것이야 말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고작 실패가 두려워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시작부터 실패가 아닐까.
사랑을 쟁취하고 인정받음에 지레 겁먹고 물러서진 말자!
그 시간에 꼼꼼히 계획하고, 전략을 세운다면, 당신도 비자발적(?) 비혼에서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비혼탈출 레시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을 피하는 방법2... 꼰대를 위한 꼰대질 (0) | 2023.03.01 |
---|---|
결혼을 피하는 방법1... '꼰대'답게 행동 (0) | 2023.02.28 |
믿음을 쌓아가는 디테일 3. 사랑하면 신뢰하고, 신뢰하면 사랑이 깊어져 (0) | 2023.02.24 |
믿음을 쌓아가는 디테일 2. 신뢰의 레벨 3단계 "난 널 믿어" (0) | 2023.02.24 |
믿음을 쌓아가는 디테일 1. 오해하지 말고 변화와 일상의 조화를 꾀해야 (0) | 2023.02.23 |
진짜 사랑을 위한 준비 2... 대화의 시작은 "입 다물고 들어라" (0) | 2023.02.19 |
진짜 사랑을 위한 준비 1...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도 있다 (0) | 2023.02.18 |
무모한 도전 1. 이해하고 시작된 변화 (0) | 2023.02.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