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이런 책을 저자로 출간했다. 초보 작가들이 꼭 알면 좋은 내용의 책. 다시 읽어봤더니 제법 셀프칭찬할만하다는 것이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직접 겪어보고, 다른 책도 섭렵해 가면서 읽을 만한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비하인드스토리는 누구나 있다. 나도 나중에 이 책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는 남겨둘까 생각 중이다. 그래서 이 책 ⟪책이 밥 먹여준다면⟫에 대한 내용을 미리 공개 좀 해놓으려고 인터넷에 '오픈'하게 되었다. _ ⟪책이 밥 먹여준다면⟫ PRLOGUE 중에서.
필자 주변엔 책을 ‘쓴’ 사람과 책을 ‘쓰겠다는’ 사람이 있다. 책을 쓴 동료들은 한 종만 내지 않는다. 대부분 2, 3종을 넘겨 지금도 책을 쓰고 있다. 그리고 책을 쓰겠다는 이에게 책은 아직도 꿈일 뿐이다. 지식과 경험을 팔아먹고사는 나 같은 지식 소매상이나 지식노동자에게 책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작업일 수도 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책 내는 게 쉽지 않았다. 1쇄의 최소 인쇄량은 최소 1,500부여야 했다. 출판사에 왜 그런지를 물으면 종이를 많이 넣을수록 인쇄단가가 낮아지는데, 적은 수량을 찍었을 때 인쇄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제 오프셋 인쇄(offset printing)를 했을 때 최소 수량은 보통 500부다. 심지어 낱권 인쇄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기 책 쓰기’가 생애의 꿈이라는 이들이 많다. 왜 그럴까?
책을 내겠다 하면 교수나 전문가, 전업작가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통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말리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은 요즘 출판시장이 어떻고, 출판비용을 회수할 수 있겠냐며 짐짓 걱정도 해준다.
하지만 “네까짓 게 무슨 책”이냐는 심보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조용히 책을 내고 그제야 주변에 알린다. 동료들의 반응은 대부분 “놀랍다, 대단하다.”가 일색일 것이다.
출판시장과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일수록 책 내는 걸 말린다. 오히려 책을 내 본 사람은 원고가 책으로 출판되는 과정이 얼마나 빠르고 대단치 않았는지를 알기에 책을 내는 건 쉽다고 생각한다. 많이 안 팔릴 수도 있지만 출판사가 책을 내자고 하는 순간, 대부분 책은 나오기 마련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직지》에는 불경이 담겼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의 금속활자 역시 《42행 성경》을 인쇄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 성서는 필사에만 3년이 걸릴 정도라 성경을 지닐 수 있었던 이들이 교권을 독점했고, 수도원에서 보관하며 교황만이 성서 해석권을 가졌다.
흥미로운 건 그의 인쇄술이 긴요하게 쓰인 곳이 바로 교회의 면죄부 발권이었다는 점이다. 면죄부에도 필사 짝퉁이 많아 교회에선 인쇄된 면죄부만이 진품이라며 마구 찍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구텐베르크의 성경 인쇄는 중세 교권을 붕괴시키는 단초가 되었다. 종교개혁의 불꽃을 쏘아 올린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95개 반박문> 역시 이 인쇄술이 없었다면 그렇게 빠른 시간에 유럽 전역에 배포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성경을 손에 쥔 민중은 주교의 말이 성경에 근거한 것인지를 따지지 시작했다. 출판이라는 도구가 애초 정보의 독점과 구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활자를 사용하기 전 조판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냐면 주로 목판이나 죽판에 글자를 새겨야 했다. 중국은 북송대 이전에는 죽간 1판에 40개 정도의 자구밖에 넣질 못했다.
심지어 한무제(漢武帝) 때 상서(上書)를 올리는데 목판 3,000개를 사용했으며, 기운이 센 장사 2명이 궁으로 배달했다고 한다. 무제는 꼬박 두 달이 걸려 그 상주문(上奏文)을모두 읽을 수 있었지만, 계산해 보면 그가 읽은 글자는 모두 12만 자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렇듯 활자는 귀한 것이었다.
조선 사대부들의 한자에 대한 숭상은 결국 활자화된 책에 대한 신비주의로 이어졌다. 군중에게 제 뜻을 전하는 일은 기호로 타인에게 뜻을 전달하기 시작한 선사시대부터 있었다.
64,000년 전의 네안데르탈인도 동굴에 그림을 암각 했고, 사피엔스는 죽은 아이 곁에 국화꽃을 뿌리며 슬퍼했다. 소를 잡고 싶다는 열망을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아이를 잃은 상실감을 꽃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뿐인가. 일제강점기의 청년 징용공은 벽에 “엄마,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라고 썼다. 누구는 낙서라 하지만, 당사자에겐 무엇보다 강력한 염원의 문자였다.
왜 집필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곤 “가슴속 언어를 활자로 기록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라고 말하는 작가도 많다. 몽골 초원에서 불이 밝혀지고 노래와 시로 하늘과 땅에 빌던 말들이 이제는 종이에 찍혀 나온다. 제 뜻을 사회구성원에게 전하기 위해 대중이 책을 출판하는 건 어쩌면 인간의 본성적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책 쓰기의 첫 번째 적은 ‘출판 신비주의’라는 관문이다. 당신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새것으로 들린다면, 작은 위로나 삶에 생기를 줄 수 있다면 당장 책 쓰기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투고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거나 필력이 부족한 것은 결국 극복된다. 1년 후에 책을 내거나 쓰고 있는 사람이 될지 여전히 생각하고 있을지는 작은 결심 하나로 갈린다.
출판사는 몰라도 책 내서 망했다는 사람은 못 봤다. 방송국 PD도, 기업체 교육담당자도, 지자체 연수책임자, 독자도 결국 책을 통해 당신을 찾아낸다. 당신이 출판을 위해 일정한 계획 아래 집필을 시작하면 생각지도 못한 삶의 변화를 겪을 것이다.
누구는 처음으로 매일 각성된 상태였다고 하고, 또 누구는 자신의 의식과 지식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아직 투고하지 않은 첫 원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 지점이 바로 작가가 되는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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