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이런 책을 저자로 출간했다. 초보 작가들이 꼭 알면 좋은 내용의 책. 다시 읽어봤더니 제법 셀프칭찬할만하다는 것이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직접 겪어보고, 다른 책도 섭렵해 가면서 읽을 만한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비하인드스토리는 누구나 있다. 나도 나중에 이 책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는 남겨둘까 생각 중이다. 그래서 이 책⟪책이 밥 먹여준다면⟫에 대한 내용을 미리 공개 좀 해놓으려고 인터넷에 '오픈'하게 되었다. _ ⟪책이 밥 먹여준다면⟫ PRLOGUE 중에서.
③ 이상한 책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은 읽지 않았어도 들어본 적은 있는 책일 것이다. 피케티는 유럽 고소득 국가의 300년 치 데이터를 분석해 자본의 수익률이 높아질수록 경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류경제학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 자본의 성장이 경제주체들을 동반성장시키고 확산해 낙수(落水) 효과를 불러온다는 기존 경제학의 명제를 뒤흔든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2013년에 나와 이듬해 국내에 소개된 이 책은 영문판만 50 만 부가 나갔고, 세계적으로 220만 부가 팔렸다. 국내에서도 10만 부가 팔렸는데 ‘피케티 신드롬’이라 불릴만큼 바람이 거셌다.
이 책이 다시 회자된 건 완독률 때문이다. 팔린 규모에 비해 완독률은 역대로 가장 낮은 책이었다. 사실 《21세기 자본》은 경제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면 읽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란 더욱더 힘든 책이다. 무려 820쪽인데 모든 챕터가 논문의 완결태다.
무엇보다 경제학 용어와 산식(算式)을 알지 못하면 80% 이상은 외계어로 보인다. 이 책을 읽기 위해 한 독서모임에선 경제학부 대학원생을 초빙해 6개월 동안 진도를 나갔다고 한다. 책의 1부를 읽다 지쳐 서재에 모셔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셸리 케이건의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도 내가 보기엔 이상한 책이다. 물론 난 이 책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고, 몇 구절은 무릎을 치며 보았다. 하지만 무려 520쪽의 책이다.
“죽음 후에는 아무것도 없고, 이를 인식할 수 있는 나 자신도 없다. 죽음은 그야말로 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간명한 결론을 내기 위해 방대한 논증을 거친다.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아이비리그 3대 명 강의”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서 몇 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아이비리그 3대 명강의라는 근거는 2012년 출판사의 서평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수많은 매체에서 따라 했는데, 그 이전엔 국내 어떤 매체도 ‘아이비리그 3대 명강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2019년 출판된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이와 같은 홍보 문구가 전혀 없다.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 이다.
1998년 국내에 소개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무려 15년이 흐른 2013년에 역주행, 베스트셀러에서 1년간 머물렀다. 이 책이 스테디셀러이긴 했지만 느닷없이 베스트셀러 1위를 탈환한 힘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서울대 도서관 10년간 대출 1순위”라는 기사 때문이었다.
2013년 12월 1일 보도가 나간 다음날 인문서 부문 1위를 차지했고 하루 판매량은 6배나 뛰어올랐다. 서울대생 대출 2순위는 김애란의 《두근두 근 내 인생》이었는데 이 역시 다음날 베스트셀러로 직행했다. 물론 동명의 영화 제작발표 소식도 한몫했을 것이다.
2013년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선 케이트 디카밀로의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을 노출했고, 2016년 tvN 드라마 <도깨비>에선 김용택 시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가 지속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어필됐다.
단순 노출이 아니라 주요장면의 내레이션으로 사용할 만큼 비중있게 다뤄졌다. PPL인 셈이다. 드라마 방영이 끝난 후에도 이 책들은 오랜기간 베스트셀러로 남았다.
2018년 방영된 tvN 드라마 <김 비서가 왜 이럴까>에선 하태완 책 《모든 순간이 너였다》가 반복 노출되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를 넘어 2018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 책의 내용까지 노출되는 PPL은 회당 수천만 원이 넘는데, 책 판매수익을 따지면 광고비에 비견할 바가 아니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 지도 몰라》와 《모든 순간이 너였다》는 모두 위즈덤하우스에서 낸 책이었는데, 독자들은 《모든 순간이 너였다》라는 제목을 보고 순간 드라마 <도깨비>의 대사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는 출판사 에디터의 전략적 기획이 아니었을까.
이 책들은 형편없는 책인데 광고로 대박을 친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 작가와 제작진이 형편없는 책을 전면에 노출해 홍보하진 않는다. OST와 같이 드라마의 정서를 온전히 이어갈 수 있는 책을 PPL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인기 드라마의 PPL이 없었어도 이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을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필자가 꼽은 ‘이상한 책’들은 사실 이상한 책이 아니다. 모두 독특하거나 좋은 상품이다. 오히려 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재미있지 않은가.
좋은 콘텐츠는 어찌되든 팔린다는 말은 진실일까?
그렇진 않다.
“팔리지 않은 좋은 책도 많고 대박을 낸 책 대부분은 좋은 ‘상품’이었다.”라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책은 상품이지만, 공 산품과는 달리 지식시장에 나오면 일정한 문화적 법칙의 규율에 적용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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