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당연히 이름난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좋겠지만, 큰 출판사의 작가 선별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 문학상을 많이 탄 작가의 작품도 거절당할 정도다.
대형 출판사는 명성에 걸맞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기에 마케팅 역량도 우수하다. 당연히 진입장벽도 높다. 아래 소개하는 '본인에게 적합한 출판사 찾는 5가지'를 참고하면 최소한 망할(?) 확률은 줄어들 것이다.
1. 잘 나가는 대형 출판사는 선택과 집중
대형 출판사의 강점은 오히려 선택과 집중에 있다. 팔리는 책은 집중적으로 밀고 안 팔리는 책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빨리 접는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실을 확인하면 2020년 10월 한 달간 ‘시공사’가 낸 책은 61종, ‘문학동네’가 낸 신간은 23종, ‘창비’는 22종이었다. ‘시공사’는 매일 2권의 책을 내고 ‘문학동네’와 ‘창비’는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1권씩 출간했다.
한 달에 20종이 넘는 책을 모두 홍보할 순 없다. 한 달에 잘 나가는 책 2~3권이 출판사를 먹여 살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간이 나온 한 달의 실적을 보고 마케팅 비용을 어디에 집중할지를 결정한다.
당신의 책을 출판사에서 밀어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려울 것이다. 잘 팔리지 않았다면 이듬해의 신간도 해당 출판사에서 계약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대형 출판사의 책이 중박도 치지 못한 것들도 허다하다.
2. 지향과 콘셉트가 분명한 출판사에서 꾸준히
발행 부수가 많지 않은 1인 출판사라 할지라도 출판사의 콘셉트가 분명하고 책에 들인 품이 많다면 눈여겨보자. 1인 출판사의 강점은 협업 소통이 뛰어나고 집중력이 높다는 점이다.
마케팅 비용을 절감해 1,000부 정도를 목표로 삼고 저자에게 10% 이상의 높은 인세를 주는 출판사도 많다. 원고를 함께 고치며 일하는 맛도 쏠쏠하다.
처음 몇 년은 작은 출판사에서 꾸준히 책을 내는 것도 좋다. 1년에 한 권씩 인문학 관련 책을 내는 지인이 있는데, 그는 새벽과 아침엔 집필하고 오후엔 대학에서 강의한다.
작은 출판사에서 1쇄 500부를 다 팔지 못했던 친구는 10년이 지난 지금 대형 출판사를 오가며 1만 부 이상을 찍어내는 중견 작가로 성장했다. 책을 낼 때마다 출판사가 달라 그 이유를 물어보니 대답이 재미있다.
처음 5년간은 투고하고 거절당하는 게 익숙했고, 그 후 5년간은 출판 에디터의 출간 제의가 많아 이젠 진정성 있는 출판사와 좋은 편집자를 만나기 위해 출판사를 자주 바꾸는 편이란다.
3. 작은 출판사의 단점은 디자인과 마케팅
1인 출판사나 작은 출판사의 단점이라면 디자인과 마케팅이다.
출판사 대표나 담당 디자이너의 역량이 뛰어나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표지 디자인에 특별한 공을 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하루 만에 표지 시안이 나오기도 한다. 내지(內紙)보다는 표지 디자인이 어려운데 출판사에서 뽑아내는 시안이 천편일률적이면 저자는 출판을 앞두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마음에 안 들더라도 책을 내야 하나.
아니면 출판사를 바꿔야 하나.
실제로 표지 디자인 때문에 출판 직전에 분쟁이 해소되지 않아 계약이 해지되는 일도 있다. 물론 한국의 출판시장은 보수적이다. 표지는 제목을 강화해야지 내용을 함축할 필요 없다는 식이다.
책의 표지는 책의 표정이고 구매욕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내공 깊은 독자들은 표지가 어떻게 나오던 작가 이력과 목차, 무엇보다 몇 절의 문장만 봐도 자신에게 맞는 책인지를 식별한다.
<문학동네시인선>의 북 디자인은 사실 컬러만 다를 뿐 표지 최상단에 명조체로 저자와 제목만 넣고도 148종을 선보였다. ‘천년의시작’ 출판사의 <시작시인선> 역시 컬러 하나에 가로로 쓰인 제목으로만 디자인한다.
대형서점의 평대에 단색 바탕에 활자로만 이루어진 시집의 표지가 기억난다면 십중팔구 <문학동네시인선> 아니면 <시작시인선>이었을 것이다. 디자인의 개별성이 없다고 독자들이 책을 사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에세이와 인문서는 표지와 제목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4. 일단 피해야 할 출판사
책이 나오면 정성이 있는 출판사는 으레 출판사와 저자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언론사 문화부 기자에게 리뷰 기사를 부탁하고, 책 리뷰 전문 블로거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다룰 수 있도록 한다.
대형 서점의 MD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총판을 통해 유통되는 지역의 주요 서점과 북 카페에도 신간이 평대에 올라갈 수 있도록 활동한다. 저자가 지명도가 있으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북 콘서트를 하기도 한다.
전략적으로 편집기획과 마케팅에 투자하지 않는 출판사가 있다. 이런 출판사는 자비출판도 많이 한다. 한 달에 7권은 찍어야 건물 임대료를 내고 직원 급여를 해결할 수 있기에 많은 출판사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자비출판을 한다. 자연스레 작품에 대한 기획이나 편집을 등한시하게 된다.
생계형 출판사에서 이런 일을 할 직원이 있을 리 없다. 회사 사정이 이러니 언감생심 마케팅은 꿈도 꾸지 못한다. 형식적으로 보도자료 하나 내고 끝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출판사에서 나오는 작품이 중구난방 계통이 없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자서전과 회고록, 평전과 백서, 50주년 기념 화보 모음과 같은 책을 자비출판 해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단지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의 욕망을 위해 시와 에세이를 묶어 자비출판을 하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처음부터 자비출판도 겸해서 했다면 해당 출판사를 선택한 저자가 할 말이 없겠지만, 초기엔 곧은 심지로 좋은 작품만을 엄선하다 이후 경영난으로 자비출판하면 문제가 다르다.
가령 '꽃비' 출판사에서 <꽃비시선>의 형식으로 좋은 작가들의 시집을 내왔는데, 어느 날 <꽃비시선 14>라는 타이틀로 자비출판한 시집이 나오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꽃비시선’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것이고 작가들은 출판권을 회수하고 싶을 것이다.
서점보다 출판사가 앞서서 책 판매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책이 이제 안 나간다 싶으면 출판사 내부에서 해당 책에 대해선 신경 끄는 것이다. 서점에 책을 입고하지 않아 고객이 책을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책이 된다.
보통 책이 출판 직후 3개월간 집중적으로 팔리다 소강을 맞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특정 시점 출판사의 노력에 따라 역주행하는 책도 많다. 이는 사실상 출판권설정 계약 내용에 있는 “계속출판의 의무”를 해태(懈怠)하는 것이다.
*<계속출판의무>란 계약기간 동안엔 책의 복제, 배포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즉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다고 절판 시키거나, 서점의 입고 요청에도 책을 보내지 않는다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
5. 마음마저 가난한 출판사
운영 여력이 전혀 없는 출판사는 재정적으로 도울 생각이 아니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운영자금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한 1인 출판사 대표는 최후의 방법으로 펀딩을 했다. 저자는 공모를 통해 모집한 신인 작가들이었고 1인당 30만 원의 선인세를 계약서에 명시했다.
다행히 펀딩에 성공했고 대표의 기대는 컸다. 펀딩 회원에게 책을 발송하고 나면 자연히 입소문이 나서 책이 나갈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사정이 어려웠기에 일러스트 작가와 저자에게 줘야 할 돈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병까지 악화되어 해당 작가들의 후속작도 1년 이상 미뤄졌다.
결국 30만 원을 받고 작품은 사장되었다. 작가들은 단체를 통해 이 문제를 이슈화했고, 출판사 대표는 계약서를 근거로 입금이 지연된 것만이 잘못이고 나머지는 출판사 잘못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가난한 출판사가 나쁜 출판사는 아니다. 하지만 좋은 계약관행을 알지 못했던 젊은 작가들에게 극악한 계약조건을 담은 계약을 성사시키고 저자에게 유리한 조항은 계약서에서 빼버리는 행태는 출판사의 영세함으로 용인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좋은 뜻으로 한 일이니 너무 돈, 돈 하지 말라.”는 업체일수록 경계해야 한다.
“너무 돈, 돈 하지 말라.”는 말은 금전적으로 도와주면서 해야 할 말이다.
이런 출판사일수록 나중에 적은 돈으로 얼굴 붉히고 관계까지 파탄 나기도 한다. 돈 문제를 모호하게 처리하는 사업가는 사람의 권리도 모호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와 출판사가 갑이 되어 횡포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계약의 모호함을 이유로 문제가 발생하면 외주 인력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이다. 주로 일러스트 작가와 윤문작가, 교정작가들에 대한 것이 그렇다.
성심껏 한 달을 투자해 작업한 결과물을 출판사 편집인은 ‘OK’ 했지만 저자가 못 받아들이겠다고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응당 해당 외주작가와의 계약은 출판사가 했으므로 저자의 견해와 관련 없이 계약금 전액을 주는 것이 합당하다.
저자가 거부해 다른 외주작가를 다시 섭외해야 하니 돈을 줄 수 없다거나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반환해 달라고 요청하는 출판사도 있다. 외주 작가들은 이 사건을 따지지 않는다. 출판사가 밥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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