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개봉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 <인턴>은 등장인물들이 인생의 미숙한 부분을 조금씩 성장시켜 나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아냈다.
영화의 주인공은 의류쇼핑몰의 경영자로 창업 1년 반 만에 회사를 직원 220명 규모로 성장시킨 줄스오스틴(앤 헤서웨이)이다. 날로 번창하는 사업에 매진하는 사이 그녀의 삶에 생긴 균열을 노년의 인턴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게 영화의 기본적인 얼개다.
70세 퇴직자로 시니어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줄스의 회사에 들어온 벤 휘태커가 바로 그 인턴으로,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했다.
회사에선 인턴이지만 인생에 있어서만큼은 훌륭한 조언자인 벤이 회사에선 경영자지만 삶에선 인턴이나 마찬가지였던 줄스를 바른 길로 인도하며 웃음과 감동을 던져주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코믹드라마다. 나는 이 영화가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나가는 게 삶’이라는 걸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벤은 멋진 정장 차림과 손수건을 계속 고수하고, 1973년에 만든 수트케이스도 잘 가지고 다닌다. 새로운 시대의 의사소통방식인 이메일과 스마트폰, 페이스북 같은 것에 힘들어 하면서도 최대한 열린 자세를 가지려 한다.
외양은 보수적일지라도 새로운 시대의 특성에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평생을 입어온 정장처럼 바꿀 수 없거나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것도 있다. 반면 세상의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혹은 불가피하게라도 바꿔야 하는 것도 있다. 벤은 그 사이의 균형을 잘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줄스를 비롯한 회사의 젊은 친구들과 벤은 좋은 친구가 된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또 다른 부분은 영화 속에서 벤은 누군가가 묻기 전에는 먼저 충고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벤은 젊은 친구들에게 할 만한 조언을 많이 알고 있지만 먼저 말을 꺼내는 경우는 없다. 젊은이들이 물어볼 때에야, 그들과 친구가 되었을 때에야 벤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고 나도 인턴 속 벤처럼 나이가 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나이가 들어도 꼰대스럽지 않은 남자’다.
얼마 전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을 키우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자녀교육에 필요한 게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이렇게 3요소였는데 요즘에는 아빠의 인맥과 할머니의 기획력까지 추가됐다고 했다.
난 아직 초보아빠인지라, 딸보다는 자식으로써 내 입장이 먼저 떠올랐다. 난 이 3가지, 혹은 5가지 조건 중에 뭐가 있었더라? 웃프게도 딱 하나 맞아 떨어지는 조건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무관심’이었다.
난 가부장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남의 집 머슴살이에 주인집 자식들 입주과외까지 해가며 학교를 마치셨다. 교복이 없어서 큰아버지 군복을 먹물로 물들여서 입고 다녔을 정도였다고 한다.
고생고생해서 학교를 마친 아버지는 바로 공무원이 되었다. 공무원 9급에서 시작해 4급까지 진급한 나름 자수성가 인물이었지만, 집에서는 빵점짜리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아버지는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분이었다. 일단 꼭 필요한 말 외엔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저 열심히 일해서 생활비를 벌어다 주면 가장으로서 본분을 다했다고 여기시는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가족들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집에 돌아오면 손 하나 까딱 하지 않고, 단칸방임에도 불구하고 방안에서 승진 공부에 힘쓰면서 담배만 피워댔었다.
나도 장남 특권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아버지만큼의 권위가 부여되는 장남으로 자란 나는 당연히 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동생들 위에 당연한 듯 군림했고 어머니는 날 아버지만큼 대우해 주셨다. 소통과 대화보다는 일방적인 명령에 익숙했고, 내 말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익숙했었다.
본래 ‘꼰대’라는 말은 늙은이를 지칭하는 은어로 주로 학생들이 선생님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최근에는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강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누구도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나도 꼰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꼰대냐 아니냐보다 중요한 건 결과 자체라는 것.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처럼, 남이 하면 하면 꼰대질이지만 내가 하면 애정이고 충고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특히나 자신보다 약하다거나 어리다는 마음이 내재돼 있는 상대와 말을 섞는다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상대가 꼰대질로 느끼면 꼰대질 밖에 되질 않으니까.
<90년대 생들이 온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책 제목이기도 하다. 요즘 신입으로 들어오는 직원들과의 나이 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자랐는데, 90년대 생들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라고 발칙하게 외친다.
기성세대의 사고체계와 그간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문제는 그들이 누구인지,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의미가 무엇인지 미처 알기도 전에 사회에 꽤 많이 진입했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밀레니얼 세대(최근 일컫는 MZ세대)는 직장에서도 남다른 모습으로 기성세대들을 혼란케 한다. 이들은 뛰어난 컴퓨터 활용능력, 어학 실력과 협업 능력을 갖추고 동시에 기존 질서에 저항한다. 조직보다 개인을 중시하며 조직과 대등한 관계임을 내세운다.
더 효율적인 업무방식이 위계 등에 가로 막히면 ‘퇴사의 이유’가 된다. 그간의 업무소통 방식에 안주하는 기성세대를 꼰대로 만들며 기존의 조직문화를 뒤흔드는 것이다.
이 낯선 존재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무엇보다 기성세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공존을 위한 첫걸음은 ‘다름을 인정하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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