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한 달에 한 권 정도의 책을 구매해서 읽는 독서층은 어떻게 형성되어 있을까.
우선 우리나라 국민의 54.4%는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사지 않는다. 책을 아예 사지 않는 연령대는 50대가 63% 정도이며, 60세를 넘어가면 비율이 70%까지 올라간다.
책을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연령은 20대에서 40대 중반으로 집중된다. 그중에서도 연간 10만 원 이상 책을 구매하는 연령대는 30대 여성(15.6%)이 가장 많다. 20대와 40대에선 완만하게 떨어졌다.
도서 적극 구매층이 연령층만을 기준으로 분포하는 건 아니다. 소득 수준이 높은 고학력 화이트칼라 계층은 그렇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연령대에 상관없이 4배 가까운 도서구매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통계대로라면 화이트칼라 고소득 30대 여성 군이 우리 출판시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초·중·고교생들이었다. 학습지와 수험도서를 제외하고 연간 21권 이상 읽는다는 응답자가 31.5%에 달했다. 혹시 수능논술이나 국어를 대비해 읽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응답자 대부분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즐겁다고 답했다. 따라서 출판사 입장에선 20, 30대 여성의 마음을 매료시킬 수 있는 테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2016년에 방영한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가 들고 다녔던 서적, 고전학자 임유경 교수의 《대장부의 삶》이 흥미로웠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서한을 다룬 책인데, 역사 서적은 당시 남성 독자들의 마당이었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회당 수천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PPL 비용을 어떻게 회수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서점에 진열된 책을 보면 사회의 상처가 보인다. 사실 이 통계에서 드러나지 않은 응답자들의 욕망은 후반부의 질문에 숨겨져 있었다.
“참여하고 싶은 독서 프로그램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34.2%의 응답자는 독서 치유를 받고 싶다고 했다.
굳이 여기서 한국사회의 살인적인 경쟁률이나 우울증, OECD 자살률, 사회 양극화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아픈 건 확실하다.
한국사회 특유의 위계와 타인의 시선까지 더해지면 ‘타인은 지옥’이 된다. 사회적 관계에서 이를 해소하지 못하니 미디어를 통해 이를 해소하려 한다.
《트라우마 한국사회》,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의 저자 김태형 심리학자는
“오늘날 한국인들은 ‘내가 너보다 더 잘났다.’는 우월감을 느끼는 데에서 삶의 기쁨을 찾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려 한다.”며 “왜 우리 사회가 ‘힐링’을 모토로 ‘가짜 자존감’에 목을 매야 하는지”에 대해 분석했다.
이러한 치유와 위로의 콘셉트는 20년째 지속되고 있다. 2023년 현재도 각 도서판매 사이트를 살펴보면 치유와 위로를 다루는 책은 베스트셀러 탑텐 안에 서너 개 정도의 자리는 차지하고 있다.
잘 나가는 '북 트렌드'라는 건 사회구성원의 은밀한 욕망을 투영하기도 하지만, 사회의 결핍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젊은 여성을 위한 <치유에세이>가 아예 베스트셀러 트렌드로 굳어진 현상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북 컨설턴트’나 ‘책 심리치료사’들은 단순히 취향과 정서에 적합한 책을 선별해 추천해 주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고액의 심리 상담을 해주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인지 심리학’과 ‘행동주의 경제학’까지 섭렵한 이들은 낡은 습관과 사고방식 때문에 자신이 가난하고 불행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책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작품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고 심리적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건 사실 현대 대중문화의 핵심 트렌드이기도 하다. 마치 심장에 구멍이 난 것처럼 심연에서 고통받다가 수면 위로 부상한 이들은 자신에게 그 삶의 부력을 선사해 준 책의 특별한 문장에 대해 말한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방탄소년단(BTS)의 노랫말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는 체험이 유독 미국에서 많이 쏟아지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잡스는 “소크라테스와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라고 말했다 고 하는데, 워런 버핏(Warren Buffett)과의 한 끼 식사에 65만 달러를 쓰는 사람들의 심리 역시 마찬가지다. 인생의 사표(師表)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큰돈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메시지의 가치’는 이런 것이다.
그 책, “읽고 싶다”에서 “가지고 싶다”로 빅테이터 전문가들은 습관처럼 서점에 들른다고 한다.
서점의 표 지를 보고 사회의 화두와 대중의 관심사를 읽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떤 책이 많이 팔리니 그것이 시대의 트렌드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대중의 소비 취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이돌 전문 방송사는 한국 젊은이들의 새로운 트렌드를 흥미롭게 조망한다. 한국 아이돌의 일상을 담는 방송이나 비하인드 영상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책이다.
아이돌은 자신이 읽은 책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거나 팬들에게 자신의 인생 책을 추천한다. 팬들은 이 책이 고전이든 새로운 에세이든 가리지 않고 구매한다. 그렇게 자신의 아이돌과 교감하고 싶은 것이다.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나 갓세븐(GOT7)의 진영이 대표적이다. 방탄소년단 리더 남준(RM)의 독서목록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팬들은 이 책을 함께 읽는다.
헤르만헤세(Hermann Hesse)의 《데미안》,
무라카미하루키(むらかみはるき)의 《해변의 카프카》,《노르웨이 숲》,
조조 모예스(Jojo Moyes)의 《미 비포 유》,
어슐러 K. 르귄(Ursula Kroeber Le Guin)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알베르트 까뮈(Albert Camus)의 《이방인》,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의 《호밀밭의 파수꾼》,
더글라스 애덤스(Douglas Adams)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 등이
팬들에게 공유되었고 이 책들은 순간 역주행을 했다.
출판계에도 영향을 미친 이른바 ‘BTS 셀러’다. 이 책 중 상당수는 그들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이해하는 토대로 활용된다. 노래 한 곡으로 완성되지 않고 해마다 쌓여가는 노랫말로만 완성되는 ‘BTS 세계관’의 영토가 문학작품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이뿐만이 아니다.
책은 젊은이들에게 고급스러운 영혼의 패션으로 정착된 지 오래다.
2000년대 초 “취미가 뭡니까?”라고 물었을 때 ‘독서’라고 하면 촌스러운 대답으로 받아들여졌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그저 인간이 교양있는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마음의 양식이었으니까, 독서가 취미라는 말은 그만큼 책과 멀어져 있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누구도 자신의 취미가 ‘밥 먹는 것’이라곤 말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의 책 한 권은 한 장의 노래 CD이자 멋진 코트나 명품 가방이 된다. 그래서 독서는 지금 아우라 있는 취미로 받아들여진다. 젊은층이 “독서가 취미다”라고 말을 한다면 그저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책을 자신 문화생활의 핵심요소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인스타그램에 넘쳐나는 책 표지 사진과 뮤지컬 공연티켓은 무엇을 의미할까. 책과 예술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패션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책은 단순히 '읽고 싶은것'에서 '갖고 싶은 것'으로 진화한다. 책의 제목과 표지, 그리고 두꺼운 질감의 그립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자책을 출간하지 않는 편이다. 이 글 또한 책의 모든 내용을 담기보다는 맛보기 형태로 전할 뿐이다. 책이 주는 그립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책이 사회의 결핍과 욕망과 문화에 직접적으로 영향 받는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책이 가장 예민한 트렌드 상품 중 하나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편에는 본격적인 책쓰기에 필요한 꿀팁도 살짝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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