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강좌엔 ‘전업수강생’들이 있다.
무슨 말이냐면, 시나 소설과 에세이 등의 작품창작을 가르치는 문화센터나 글쓰기 아카데미를 옮겨 다니면서 수년을 ‘배우기만 하는’ 수강생들이다.
물론 가르치는 선생이나 교육기관 입장에선 이들처럼 고마운 존재도 없을 것이다. 수년간 강좌 쇼핑을 하는 이들의 사유는 다양하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작가의 강좌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선생님들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기존 수업의 작가가 가르치는 방식이 너무 낡았다거나, 자신의 첫 작품을 여러 수강생 앞에서 갈기갈기 해부해 모욕감을 느꼈거나, 작품에 대한 품평이 알듯 모를듯 추상적이라 원고를 퇴고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등등 각양각색이다.
대부분은 수년이 지나도 등단은 커녕 출판도 못할 때가 많다. 보통 이런 글쓰기 강좌는 짧게는 10주, 길게는 6개월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런 창작 강좌를 수년간 해 온 시인과 소설가가 있다. OOO 시인은 순전히 생계를 위해 수업을 한다. 한국 시인의 많은 분들이 빈곤층에 가깝다고 한다. OOO 소설가는 아직 등단하지 못한 젊은이와의 만남이 삶과 창작에 생기를 준단다.
물론 “창작을 과연 수업으로 배울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이들을 좋은 문인이라 인정하는 이유는 이들이 오늘도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등의 치열한 영혼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 그만 배우고 제발 써라
이들 역시 수강생에 대해 평가를 한다. 내가 아는 한 서정시인이 있는데 그는 "시를 시처럼 보이려고 시를 ‘만드는’ 수강생이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시의 어법이나 이미지를 쌓아 올리는 방식에 대해선 가르칠 수 있지만,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은 시는 차마 보기도 싫다는 말이다.
그 시인은 "시를 좋아하면 수백 권의 시집은 쉽게 읽고, 또 좋은 표현은 자신의 노트에 적어두곤 하는데 시를 시적으로 보이기 위해 상투적 표현을 빌려오고 내용조차 진부할 때가 그렇다" 덧붙여 말한다.
소설가 지인의 고민은 조금 다르다. 일정 기간 창작 수업을 하면서 수강생들이 작품을 제출해야 하는데, 종강할 때까지 작품을 내지 않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럴 땐 그 소설가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이전에 제발 써라.”라고.
2. 낭비되는 글쓰기는 없다
평생 싸구려 와인과 경마를 벗 삼아 아파트 구석에서 은둔했던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1920-1994)는 독특한 스타일로 미국 문단에 큰 자극을 준 문인이었다. 당대 젊은이들이 그의 문체를 따라 쓰는 열풍이 불었을 정도다.
아래는 중년이 될 때까지 작품을 인정받지 못 한 그가 <콜로라도 노스 리뷰>의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일부다.
“내구성 없는 재능은 빌어먹을 범죄요. 그들이 부드러운 덫에 걸린다는 뜻이오. 그들이 칭찬을 믿었다는 뜻이고, 그들이 금방 안주해버렸다는 뜻이지. 작가는 책 몇 권 썼다고 작가가 아니라고. 작가란 문학을 가르친다고 작가가 아니라고. 작가란 지금. 오늘 밤. 지금 이 순간 쓸 수 있을 때만 작가요.”
...《글쓰기에 대하여》 중에서.
사실 이 문제는 작가의 생명력에 대한 문제다. 책 몇 권 쓰고 개점 휴업하는 작가가 될지 칠순이 넘어도 아침에 노트북을 여는 것이 즐거운, 영원한 작가로 남을지에 대한 문제다.
찰스 부코스키는 원고를 퇴짜 맞은 경험을 이렇게 표현한다.
“글쓰기란 죽이게 재미있는 게임이죠. 거절당하면 더 잘 쓰게 되니까 도움이 되고, 수락받으면 계속 쓰게 되니까 도움이 됩니다.”
유명해지기 위해 글을 쓴 이들은 유명해지면 돈이 목표가 된다. 그의 작품이 퇴락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일 쓰며 사유방식을 다듬는 건 운동선수가 제 근육을 키워 관리하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매끄러운 글맛을 찾게 되고 그다음에는 문장과 표현에 집중하게 되지만 완숙해지면 더 깊은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매일의 집필이 선사하는 내공이다.
일단 글을 써야 자신이 가진 것을 알게 되고 다른 이에게 보여야 자신의 눈엔 보이지 않던 결함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문장과 구성 등이 완숙해지면 남는 문제는 결국 삶에 대한 관점, 인간관인데, 이는 오직 오랜기간 조탁해온 자신의 세계관에서 퍼 올리는 것이라 누가 대신 일러줄 수 없다.
골방에서 책을 보며 이를 흡수한 사람의 현실 인식엔 한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매일의 고단한 노동을 견디며 글을 쓰지 않고선 못 견디는 다른 문우들과의 교류는 중요하다.
3. 누더기 원고가 기획의 토대
자신만의 콘텐츠로 책을 내려 하는 사람이라면, 구성이나 자료조사에 앞서 우선 써봐야 한다. 머릿속의 관념을 글로 옮겨야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것과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들의 실체가 드러난다.
글로 옮기고 나면 이미 다른 저자들이 했던 내용을 반복하는 대목이 보이고, 객관적 실체가 없는 관념 덩어리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상태로는 ‘초고’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습작원고’일 수 있다. 발품을 팔아 정보를 더 얻어야 할 때가 있고, 원고를 덮어놓고 공부를 더 해야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원고의 50%가량을 덜어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손에 쥔 것이 번쩍이는지를 확인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나는 ‘진실의 순간’이라 부르고 싶다. 머릿속 관념을 현실적 토대로 만드는 힘 역시 우선 써놓는 것이다. 이런 누더기 원고가 책 기획의 토대가 된다.
4. 매일 쓰되 구성표에 따라 전략적으로 움직여라
예비 작가든 기성 작가든 매일의 글쓰기는 ‘업(業)’이다. 머릿속을 휘젓는 것들이 너무 많아 쓰지 않고선 못 배기는 상태라면 최상의 상태다.
하지만 기성작가 대부분이 때론 노트북을 열기도 싫은 날, 원고를 진척시키기 위해 자신을 ‘글 감옥’에 가두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매일 글쓰기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선 부연하지 않겠다.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면 글쓰기 경로를 명료하게 밝히는 것이 좋다.
두 부류의 예비 작가가 있다. 매일 꾸준히 머릿속에 드는 상념을 다듬어 쓰다 원고가 일정하게 찼을 때 출판을 준비하는 사람과 처음부터 책의 콘셉트와 목차를 설정하고 이를 완결하기 위해 조사하며 원고를 쓰는 사람.
개인적으로는 시, 에세이, 회고록같이 일상적 소재와 긴밀히 연결된 장르는 전자의 방식이 좋다고 본다. 시인은 2년간 쓴 200여 편의 시 중 좋은 시 70여 편을 선별해 다시 퇴고하고, 에세이 역시 좋은 것을 선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 하나가 200쪽을 넘어가는 소설, 드라마나 인문, 기술서적은 후자의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다. 소설과 드라마는 인물과 사건 지면(회차)마다 할당해야 할 구성요소가 치밀하고 인문, 기술 서적은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인용처를 명시하며 준비해야 한다.
먼저 잘 쓸 수 있는 부분을 쓰더라도 소제목까지 준비된 목차가 있었을 때 글감을 준비할 수 있다. 소설이나 기술서적은 그저 책상에 앉는다고 글이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여러 단편을 모아 짜집었을 때 말 그대로 누더기 원고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수 있다.
200쪽이 넘는 논문을 써본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특정 용어와 부호, 표기법을 처음부터 일관되게 사용하지 않고 혼용했을 때 이를 교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제로 출판을 결심하고 어김없이 책이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출판사와 가계약이 잡혀있는 경우다. 그들은 탈고를 위해 일상을 조직하고 휴가를 반납하는 등의 목적의식적 글쓰기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의 구성과 목차에 따른 핵심내용을 정리하고 이를 <세부 구성표>로 설정한다. 그다음엔 집필계획을 잡아 최대한 객관적인 프로세스로 이를 산출한다.
이 프로세스가 결국 자신을 압박하고 전날의 술 자리를 후회하게 만들고, 새벽에 벌떡 일어나 글을 쓰게 한다. 즉, 목차는 글쓰기의 강력한 추동력이다.
5. 까칠한 독자를 앞에 앉혀둬라
앞서 본격적으로 원고를 집필하기 전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손에 쥔 것을 먼저 끄적거리며 확인하라고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가면 때론 쓰는 시간보다 생각하거나 정보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책 쓰기는 ‘매혹하기’라는 전략이 필요하고, 그 원고는 정합적이어야 한다. 원고 안에서 자신의 주장을 부정하는 모순이 없어야 한다. 어떤 종류의 글들은 논리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좋은 책 중 그런 글은 없다.
소설과 에세이에도 인과와 감정논리가 있어야 하고, 어학서적과 인문서적 역시 사전에 상정한 독자의 인식 흐름을 따라야 한다.
일반적인 글쓰기와 책 쓰기의 가장 큰 차이점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쓰기는 독자를 대상으로 말을 거는 것이고, 독자의 욕구와 상상을 기준좌표로 설정해 일관된 전개와 글의 함량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어느 지점에서 독자가 무릎을 칠지, 어떤 대목에서 지루함에 책을 덮을지를 전략적으로 재고하는 작업이다.
책상 너머에 친구나 배우자가 아닌 까칠한 독자가 앉아있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이런 습관은 원고의 오류를 사전에 거르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나중에 이야기의 종점을 잃어버리거나 인물 성격의 논리적 모순, 자기 철학에의 위배를 깨달아 다시 써야 하는 불행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인덱스(색인)와 자료표를 축적하라
평소 필요한 정보를 출처별로 정리해 파일로 저장해두면 좋다. 그런데 평소 메모하고 자료 정리하는 것을 습관 들이지 않았다면, 인문·과학·기술 영역의 책을 집필하는데 의외로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평소 정확한 원문과 저자, 출처를 분류해 PC에 저장해두면 수십 권의 책을 다시 통독하지 않더라도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정보의 흔적을 컴퓨터에서 금방 추출할 수 있다.
또한 집필에 필요한 자료가 모두 집에 있다면 그나마 수월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료를 구해 다시 확인하는 데에만 수개월이 훌쩍 지나간다.
책에서 한 줄이라도 인용하려면 해당 문구와 함께 저자, 책 제목, 페이지, 출판사, 발행연도를 알아야 하고 인터넷이나 뉴스를 인용할 때 역시 기사 원문과 언론사, 발행일시, 기자 이름을 명시해야 한다.
특히, 연구 성과를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라면 인용문과 참고 문헌이 빼곡하기 마련인데 집필하면서 책상에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찾으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실제로 첫 논문을 집필하는 대학(원)생들은 더러 일을 두 번 하기도 한다. 시간에 쫒기면 원고량을 채우기 위해 인용문의 원문과 출처, 특정 정보에 대한 기록을 완결적으로 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집필한다. 나중엔 중요정보를 어느 자료에서 봤는지도 헛갈려 참고문헌을 다시 들춰봐야 할 때도 많다.
엑셀 프로그램이나 전자문서 집필 프로그램에는 대부분 색인기능과 상용구 등록, 하이퍼링크 기능 등이 있다. 이를 활용하면서 관련 자료를 축적하면 당장의 책을 집필하는 데도 도움될뿐더러 평생의 글쓰기 자산이 된다.
외국어 교육 서적이나 역사서는 방대한 양의 원문 자료나 사료와 한자 등을 써야 하는데, 처음부터 구성표에 관 련 자료를 연결해 놓으면 매우 효율적이다.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희곡도 마찬가지다. 매 장마다 등장인물이 나올 때마다 캐릭터와 주변인과의 관계, 사건의 연도, 장소, 해당 연도의 특정 사건, 시대상을 담은 기물 등의 관련 정보를 버무려야 하는 데 이를 초기 구성표와 인물표, 연대기표 등으로 만들어 연동해 놓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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